[특집] 소통하는 크리스천(5) 소통은 뉴스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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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 목사(주님의 교회 담임, 그레이스 미션 대학교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교수).
네팔에서 들려오는 홍수 소식 앞에서는 숫자를 읽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사망자 몇 명, 실종자 몇 명이라는 통계 뒤에는 어젯밤까지 함께 밥을 먹던 가족이 있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가 있다. 집 한 채가 사라졌다는 말도 단순히 벽과 지붕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사진과 식탁, 오래 쌓아온 추억까지 함께 쓸려갔다는 말이다.
최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의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빙하와 암반 붕괴로 큰 홍수가 발생했다. 강을 따라 밀려온 물과 진흙은 마을과 도로, 다리와 발전시설을 덮쳤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남겨진 가족들은 병원과 구조 현장을 오가며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참혹한 재난 속에서 유난히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오랜 시간 버틴 한 사람이 구조된 것이다. 가족들은 이미 희망을 놓고 장례식까지 치렀는데, 구조대원이 잔해 속에서 아주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누군가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사람의 소통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더 잘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좋은 표현을 찾고, 더 쉽게 설명하고, 더 설득력 있게 말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물론 그런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말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잘 듣는 것은 아니다.
진짜 소통은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보다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에서 시작한다.
네팔 현장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들도 자신들이 주고 싶은 것을 먼저 정하지 않았다. 현지 주민과 지방정부, 지역 공동체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 대답을 바탕으로 식량과 생필품, 대피시설을 준비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자기중심적인 도움은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고 만족한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묻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우리는 곧바로 해결책부터 내놓으려 한다. “이렇게 해봐”,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때로는 해결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 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다.
고통 앞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태도는 그 의미를 너무 빨리 설명하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더 조심하지 않았는지 말해 주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잘 정리된 설명이 아니다. 함께 울어줄 사람이고, 오늘 밤 몸을 덮을 담요이며, 목이 마를 때 건네는 물 한 병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고통보다 우리의 설명이 먼저 나가서는 안 된다.
이번 네팔 재난은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묻게 한다. 히말라야의 빙하와 영구동토가 불안정해지면서 산악 지역의 재난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적게 소비하고 적게 배출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정의의 문제이며 이웃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을 돌본다는 말도 나무 몇 그루를 심는 데서 멈출 수 없다. 내가 쓰는 에너지와 소비하는 물건, 익숙하게 누리는 생활방식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소통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만 돌아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도 생각한다.
재난 앞에서는 국적과 종교, 문화의 경계도 넘어야 한다. 도움을 주기 전에 “당신은 누구입니까?”부터 묻는다면 우리의 관심은 너무 좁아진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가 아니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재난은 며칠이 지나면 뉴스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삶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무너진 집을 다시 짓고, 생계를 회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오랫동안 견뎌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도 한 번의 기부나 짧은 위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소통은 한 번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힘든 일을 겪으면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연락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줄어든다. 정작 그 사람이 가장 외로운 순간은 모두의 관심이 사라진 뒤일지도 모른다.
소통하는 사람은 그때 다시 연락한다. “요즘은 어때?” 짧은 한마디지만 그 안에는 “나는 아직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가 당장 네팔까지 갈 수 없고 큰돈을 보낼 수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믿을 만한 구호기관을 돕고 피해자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가까이에 있는 외로운 이웃을 돌아볼 수도 있다. 멀리 있는 고통을 바라보는 일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더 잘 보게 해야 한다.
나는 다시 잔해 속에서 들려왔다는 작은 목소리를 생각한다. 세상에는 지금도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그런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목소리가 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는 사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부담을 줄까 봐 입을 다무는 사람이 있다.
소통하는 사람은 그런 작은 목소리를 듣는다. 더 크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자기 입장을 설명하는 데 빠른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아픔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재난 앞에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가장 강력한 소통은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
네팔의 홍수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나를 위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먼저,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서로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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