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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3
    [특집] "여보, 얼마 주고 샀어?"…AI가 불러온 '결혼생활 위기' 사람과사회
    인공지능(AI)이 사진만으로 제품 정보를 파악하고 시세를 추정하는 ‘디지털 감별사’ 역할을 하면서 기혼자들의 소비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과거에는 전문가나 동호인들만 알 수 있었던 제품 정보가 AI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손쉽게 제공되면서다.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아내가 생성형 AI로 새로 산 키보드 값을 정확히 알아내 난처해졌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작성자는 100만원이 넘는 고가 키보드를 구매했지만, 아내에게는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계 전자상거래(C-커머스) 플랫폼에서 값싸게 부품을 산 뒤 15만원 정도 들여 교체한 것”이라고 둘러댔다.그러나 이를 수상하게 여긴 아내가 생성형 AI에 키보드 사진을 올려 가격을 물어보자 AI가 실제 가격에 근접한 답변을 내놓으면서 거짓말이 들통났다.그는 “와이프가 컴퓨터를 잘 몰라 지금까지는 넘어갔는데 AI 때문에 결혼생활에 대 위기가 왔다”고 토로했다.고가 취미용품 가격을 배우자에게 축소해 설명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고가 취미용품 가격을 배우자에게 낮춰 설명하는 것은 평화 유지를 원하는 기혼자들의 오래된 ‘비책’이다.해외 취미 커뮤니티에서는 “내가 죽으면 아내가 물건을 내가 말한 (저렴한) 가격대로 처분할까 봐 두렵다”라는 문구가 밈처럼 사용된다. 낚시 장비와 골프채, 카메라, 게임기, PC 부품 등 고가 취미 용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배우자 몰래 비용을 숨기거나 실제보다 저렴하게 설명하는 상황을 풍자한 표현이다.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이 같은 농담도 점차 통하지 않게 됐다.지난해 3월 한 해외 자전거 동호회 페이스북 그룹에는 “AI의 새로운 피해자가 됐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게시물에는 아내가 생성형 AI에 고급 자전거 사진을 올린 뒤 “남편은 이 자전거가 300달러(약 46만원)라고 했는데 맞느냐”고 묻는 대화 화면이 담겼다. AI는 자전거의 브랜드와 부품 구성을 분석한 뒤 “수천 달러 상당의 고급 모델로 보이며, 사양에 따라 1만달러(약 1천500여만원)를 넘을 수 있다”고 답했다.게시물에는 “왜 이런 걸 공개해서 우리까지 배우자에게 혼나게 하나”, “디지털 고자질쟁이”라는 농담 섞인 반응과 함께 “AI의 피해자가 아니라 배우자에게 거짓말하다가 들킨 것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변화는 취미 용품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AI를 활용해 제품의 적정 가격을 추정하는 서비스가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이용자가 판매한  명품 시장에서도 AI 감정 서비스가 등장했다.트렌비가 지난해 10월 선보인 사진 기반 AI 정·가품 감정 서비스 ‘클루비’는 사용자가 명품 사진을 업로드하면 AI가 이미지를 분석해 정·가품 가능성과 근거를 제시한다. 사람의 경험과 판단에 의존하던 감정 영역에도 AI가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과거 전문가나 동호인의 경험에 의존했던 정보에 일반 소비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사진만으로 제품 가치와 특성을 추론할 수 있는 AI가 등장한 배경에는 멀티모달(텍스트·이미지 등 여러 형태의 정보를 함께 처리하는 AI) 기술의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AI비즈니스 전문가들은 “예전 이미지 인식 AI가 ‘이것은 가방이다’ 정도 분류에 머물렀다면 최근 멀티모달 AI는 로고와 형태, 부품 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제품의 가치까지 추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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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
    [특집] [김병학컬럼]소통은 말 뒤의 신호를 듣는 일이다 사람과사회
    어떤 밤에는 방 안의 불은 꺼져 있는데 휴대전화 화면만 오래 켜져 있다. 누군가는 메시지를 썼다가 지운다. “나 너무 힘들어.” 다시 지운다. “혹시 지금 통화할 수 있어?” 그것도 지운다. 결국 남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야”다.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는 숫자가 아니다. 그 지워진 문장들의 흔적이다. 말하지 못한 고통, 듣지 못한 공동체, 연결되지 못한 도움 요청이 그 뒤에 있다.   2025년 9월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고려대 의대 이요한 교수 연구팀은 세계보건기구와 유엔 자료를 바탕으로 2001년부터 2020년까지 55개국 청년 자살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 20~39세 여성 자살률은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18.9명으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일본 12.0명, 미국 6.8명보다도 훨씬 높다. 특히 2016년 이후 한국 청년 여성의 자살률은 해마다 8% 넘게 증가했고, 세계 평균 여성 청년 자살률 5.07명과 비교하면 거의 네 배에 가까웠다. 연구팀은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로 보았다.   이 수치를 보며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젊은 여성들은 말해도 닿지 못하고, 도움을 청해도 연결되지 못하는가.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충동으로만 설명하면 안 된다. 물론 한 사람의 내면에는 타인이 다 알 수 없는 어둠이 있다. 그러나 그 어둠이 깊어지는 과정에는 반드시 관계와 환경이 있다. 말할 수 없는 분위기,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 도움을 청해도 실제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제도. 그런 것들이 겹칠 때 위기는 조용히 커진다. 소통은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다. 소통은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그 신호 앞에서 멈추고, 실제 응답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능력이다. 말은 있었는데 응답이 없었다면, 그것은 소통이 아니다. 상담 창구는 있었지만 삶의 자리까지 닿지 못했다면, 그것도 충분한 소통이 아니다.   가정은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때로 가장 먼저 침묵을 배우는 곳이 된다. 사회는 많은 말을 요구하지만, 정작 약함을 말할 자리는 좁다. 제도는 도움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한 사람의 밤까지 닿지 못할 때가 많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도움을 청했다면, 그는 이미 살기 위해 움직인 사람이다. 그 요청이 끊어지지 않게 붙잡는 것이 사회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끊어진 고리를 다시 이어야 할까. 정부, 학교, 직장, 의료 체계가 당연히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행정 절차 속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산다. 자주 마주치는 얼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말없이 곁에 앉아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교회를 말할 수 있다. 다만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교회가 지금 그 역할을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교회는 아픈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우울을 믿음 부족으로 오해했고, 불안을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단정했으며, 여성의 고통을 “참아야 할 몫”처럼 다룬 적도 많았다. 어떤 교회는 젊은 여성들에게 쉼보다 봉사를, 질문보다 순종을, 자기 목소리보다 조용한 헌신을 먼저 요구했다. 그런 교회라면 대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침묵 구조가 된다.   그럼에도 교회가 대안이 될 가능성을 말하는 이유는, 교회가 본래 붙들어야 할 인간 이해 때문이다. 사람은 성과로 환산될 수 없는 존재다. 쓸모가 줄었다고 가치가 줄어드는 존재도 아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버려지는 존재도 아니다. 한 생명은 조건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이것은 종교 안에만 머물 말이 아니라, 지금 사회가 잃어버린 가장 기본적인 윤리다.   교회가 이 믿음을 실제 관계로 살아낸다면, 교회는 다시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 평가받지 않고 울 수 있는 자리.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리. 고통을 설명하지 않아도 잠시 숨 쉴 수 있는 자리. 혼자 견디던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자리.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그런 관계다.   교회가 정말 교회다우려면 고통을 빨리 해석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묻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들어야 한다. 아픔을 교훈으로 만들기 전에 한 사람의 삶을 먼저 붙들어야 한다. 신앙의 언어가 사람을 살리려면, 그것은 정답처럼 던져지는 말이 아니라 곁을 지키는 몸짓이어야 한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 증가는 우리 사회가 덜 듣고 있다는 증거다. 더 정확히 말하면, 듣고도 충분히 응답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가정은 감정을 훈계하기 전에 들어야 한다. 사회는 경쟁과 평가만으로 사람을 몰아붙이는 방식을 멈춰야 한다. 제도는 도움 요청을 접수하는 데서 끝나지 말고 실제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자신이 잃어버린 역할, 곧 아픈 사람의 곁이 되는 일을 다시 배워야 한다.   누군가 “나 힘들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닐 수 있다. 구조 요청일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빠른 조언이 아니다. 판단도 아니다. 먼저 멈추는 일이다.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일이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함께하면 좋을까.” 어쩌면 한 사람은 바로 그 한 문장 때문에 오늘을 건널 수 있다. 소통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도,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된다.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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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특집] [주성철컬럼]학교에서 자녀의 안전과 부모의 권리 보호. 사람과사회
    요즘 캘리포니아주에서 급부상하는 이슈가 있는데 그것은 AB495 법안이다. 이것은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AB 495 법이 공립학교에서 학생을 데려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심각한 혼란을 야기했다. 부모로서 여러분은 자녀를 학교에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명확한 정보와 통제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본 태평양 법률협회(Pacific Justice Institute)는 비상 연락처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 자녀를 데려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학부모용 통지서를 제작했다. 이 통지서를 작성하여 자녀의 학교에 제출하면 된다. 이 통지서는 응급 구조대원이 출동하는 긴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자녀를 비상 연락처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에게 인계할 수 없음을 학교에 명확히 알리는 내용이다.목적: 이 법적 통지서는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해 작성되었다. (1) 자녀를 학교에서 데려가거나 데리러 올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부모 또는 법적 보호자의 권한을 재확인한다. (2) 자녀를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을 비상 연락처로 등록한 사람으로 제한한다. (3)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사람이 “보호자 동의서”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한다. (4) 화재, 총기 난사 사건 또는 생명을 구하는 병원 이송과 같은 응급 상황의 경우, 공식적인 응급 구조대원만이 자녀를 이송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한다. 이 통지서를 자녀의 학교에 제출함으로써, 귀하는 교육청에 귀하의 의사를 서면으로 명확히 전달하고 가족의 법적 보호를 강화할 수 있다.이용 방법: 학부모 안내문은 다음과 같다. (1) 서면으로 변경하거나 철회하지 않는 한 2025-2026학년도 전체에 적용된다. (2) 자녀의 이름, 학년, 학교가 명시된다. (3) 응급 상황 발생 시 응급 구조대원을 제외하고는 비상 연락처 목록에 없는 사람은 자녀를 학교에서 데려갈 수 없다. (4) 이 안내문을 무시할 경우 학부모 또는 보호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학교와 교육청이 책임을 질 수 있음을 고지한다.이 자료 사용 방법: 본 협회에서는 AB495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학부모들에게 공지하고 학부모나 관계되는 사람은 본 협회 웹에 들어가 양식을 다우로드 받아 필요한 내용을 기입하고 학교로 우송하도록 하다. 본 협회 양식을 다운로드받아 작성할 수 있기를 바라는바다. https://mailchi.mp/pji.org/ab-495-parental-notice-form. 중요한 것은 빠짐없이 모두 작성해야 하고, 자녀 이름, 학년, 학교를 입력하고 본인의 이름을 도렷하게 쓸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부모 또는 법적 보호자로서 서명하고 날짜를 적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작성한 모든 서류는 학교 행정사무실에 제출하고 사본은 각자가 보관하도록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공립학교에서 반 기독교, 반 가족 사상을 주입시키는 가운데, 자녀들의 교육을 공립학교에서 책임진다는 이유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가정을 떼어 놓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하교시 누구든지, 즉 부모나 법적 보호자가 아닌 사람이 얼마든지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AB 495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은 물론이고 반 가정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행동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 내용을 보시는 분들은 가능한 한 주위분들에게 널리 알려 줘서 아동들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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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특집] [발행인의 시선] 사람과사회 사이에서(1) “분열보다 연대가 필요한 시대” 사람과사회
    ​신문을 만들다 보면 복잡한 상황속에 있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목회자, 사업가, 봉사자, 정치인, 교사, 그리고 이름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까지 말입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 다르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함께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쩐지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편을 가르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어쩌다 미국의 정치나 한국의 정치 이야기가 등장하면 결국엔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되고, 세대 간의 생각 차이는 갈수록 커져 갑니다. 심지어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등을 돌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닙니다.우리 이민 역사를 돌아보면 사실 지금의 한인사회는 수많은 협력과 연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단체를 만들고, 후배 이민자들을 도우며 오늘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습니다. 혼자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서로 손을 잡아주고 밀어주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함께 가는 것보다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각자 자기 시각에서 옳고 그르다는 흑백 논리가 모든 것을 앞지릅니다. 물론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달라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같은 목적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마음일 것입니다.특히 우리 한인사회는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1세대가 일군 터전 위에 2세대와 차세대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간의 차이도 나타나고, 가치관의 변화도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을 갈등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이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많습니다. 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여러 어려움과 갈등을 수년간 겪으면서도 다시 연합을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참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주변에서 서로 격려하고 힘을 실어 주려고 마음 쓰는 모습을 보게 되면 왠지 가슴이 웅장해 집니다.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교회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존중하고 공동의 사명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연합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사람과사회”는 창간 이후 지난 5년간 해 왔던대로 앞으로도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큰 성공을 거둔 인물들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 자신의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를 조금은 더 살만한 사회로, 조금 더 풍성하고 조금더 따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마음 역시 변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이번 한 달도 누군가와의 “작은 차이”보다 “함께할 수 있는 더 큰 이유”를 먼저 발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가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A time for Unity rather than Division..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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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특집] 제2회 한국전 참전용사에게 바치는 청소년에세이대회 열려 사람과사회
    올해로 두번째 열린 청소년 에세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글로벌힐링아트(대표 김은미)는 한인 청소년들이 한국전참전용사기념비가 있는 풀러톤에서 제2회 G.H.A.T 청소년 에세이 대회 시상식이 뜻깊게 열렸다고 밝혔다.글로벌 힐링 아트 테라피(Global Healing Art Therapy, GHAT)는 예술을 통해 개인의 감정을 회복하고 지역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비영리 단체로 예술, 음악,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창의적 매체를 활용하여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문가를 위한 임상 치료가 아닌, 예술을 기반으로 한 비임상적 커뮤니티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사회 봉사로 노숙인(홈리스)을 대상으로 한 아트 봉사 및 수제 아트 키트 제공, 지역사회 캘리그래피 버스킹 등을 통해 따뜻한 메시지를 나누기도 한다. GHATS는 '자녀의 미래를 세우는 시편 기도회(자.미.세)'와 같은 모임을 통해 부모의 마음 회복과 자녀를 위한 영성 활동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리버데일(Riverdale) 지역에 Global Healing Creative Arts Therapy Studio를 운영하며, 워크숍이나 그룹 세션을 위한 공간 대여 서비스도 제공한다. 글로벌 힐링 아트는 미국 연방정부에 등록된 501(c)(3) 비영리단체로, 지역사회 연결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중이다. 김은미 대표는 공식 웹싸이트에서 “우리 단체는 청소년들이 예술적 봉사활동과 창의적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자신감과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면서 커뮤니티 센터, 문화기관 등과 협력하여 청소년들이 사회적 책임감과 리더십을 경험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예술 기반 봉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저희는 예술과 나눔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봉사를  통해 정신적웰빙과 사회적 회복력을 키워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상식 행사는  "California Art University Student Ensemble"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시작됐는데  참전용사 기념비 앞에 울려 퍼진 미국 국가와 애국가는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경건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총 35명의 참가자가 정성껏 써 내려간 글을 통해 영웅들을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는데 어른부부터 초·중·고등부까지, 각 부문의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성인부 Mi Jung Bak(Adult 1등), Morgan Kim(Adult  2등)고등부 1등 Sharon Kim(9학년,Orange County School of the Arts), 2등 *Stella Hahm(10학년 Orange County School of the Arts) *Ashlyn Yi(9학년, Ruben Ayala High School) *Christina  Ryu(9학년, Sunny Hills High School), 3등 *Juha Joel Chang(11학년, High School), *Joshua Chung(10학년, Portola High School), *Hajung Woo(11학년, West Ranch High School), *Kyle Hahm(11학년, Sunny Hills High School)중등부 1등  Jianna Bak(8학년, Cedarlane Academy), 2등 *Siyoon Lee(8학년, Middle School), *Rinnah Bak(7학년, Cedarlane Academy), 3등 *Hayul Bak(8학년, Seoul Academy), *Haeyul Park(8학년, Seoul Academy) *Juhun Hong(7학년, Beatty Jr High)초등부 1등 Gabriella Lee(1학년,  Frances Meeks Elementary School)<고등부 1등> Young Oak Kim: Freedom is not free | Sharon Kim / 9th GradeImagine fighting a war where the cold alone could kill you. During the Korean War, soldiers had to deal with temperatures so low that their rifles would freeze and frostbite could set in within minutes. On top of all that, they still had to fight the enemy. One officer who led his men through these brutal conditions was Young Oak Kim, a Korean American commander whose bravery made him one of the most respected figures of the war. As a Korean American myself, his story feels personal to me. Young Oak Kim's life proves that freedom is never free. He spent his whole life paying for it, first by pushing through discrimination, then by leading soldiers through one of the hardest wars in American history, and finally by coming home and continuing to fight for his community. Young Oak Kim was born in 1919 in Los Angeles to Korean immigrant parents, which is something I can relate to because my family has a similar background. Life was really hard for him growing up. His family didn't have much money, and being Asian American back then meant dealing with a lot of racism. Even though he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people treated him like he didn't really belong here. Historian Ronald Takaki wrote that Asian Americans during this time constantly felt like they were both insiders and outsiders in American society (Takaki 7–8). I think a lot of Korean Americans still feel that way sometimes, even today. Before he ever put on a uniform, Kim was already fighting just to be treated as an equal. But instead of giving up, he used those experiences to push himself harder. He even served in World War II with the 442nd Regimental Combat Team, a unit made up mostly of Japanese American soldiers who were fighting for a country that had put their own families in internment camps. That really says a lot about the kind of person Kim was becoming. When the Korean War started, Kim served as an officer in the U.S. Army's 7th Infantry Division. This war feels especially close to me because Korea is where my family roots are. The whole peninsula was being torn apart. Families were separated and entire cities were destroyed. According to the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soldiers had to fight in conditions where the weather and terrain were just as dangerous as the enemy itself. It was dangerous in every direction. What made Kim stand out was how much he actually cared about his soldiers. Instead of staying somewhere safe and giving orders, he went out to where his men were, even under enemy fire, just to check on them. The U.S. Army's leadership manual says that good leaders have to stay calm and make smart decisions even when everything is chaotic (U.S. Department of the Army, FM 6-22, Ch. 2). His soldiers trusted him because he was right there with them, going through the same dangerous things they were. Every single day in Korea was proof that freedom has a price, and Kim and his soldiers were the ones paying it. After he retired as a colonel, Kim moved back to Los Angeles and became really important in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He worked hard to improve education, create more opportunities, and give Asian Americans a bigger voice in politics at a time when they were being ignored. Historian Sucheng Chan wrote that Asian American history has always been about fighting to be recognized and included in America (Chan 3–5). That really means something to me because my own parents came here hoping for exactly that. A real chance at a better life. There is even a center named after him called the Young Oak Kim Center for Korean American Studies, which helps students get better opportunities and become leaders. When I read about that I thought about how hard my own parents have worked to give me a good education. Kim understood that freedom isn't just about surviving a war. It also means having access to school and a fair shot at life. Young Oak Kim's story means a lot to me because I see parts of my own family's story in it. He was the child of Korean immigrants, he faced discrimination, and he still chose to serve and fight for this country. He fought in a war on the same peninsula my family comes from, and when he came home, he didn't stop. He kept working to make life better for his community. My parents came to America because they wanted a better life and more freedom. Kim's story reminds me that none of that was free. A lot of people worked really hard and gave up a lot for the opportunities I have today, and that's not something I want to take for granted. Works Cited Chan, Sucheng. Asian Americans: An Interpretive History. Twayne Publishers, 1991. Takaki, Ronald. Strangers from a Different Shore: A History of Asian Americans. Back Bay Books, 1998. U.S. Department of the Army. Field Manual FM 6-22: Army Leadership. 2006.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Korean War Operational Conditions and Combat Reports." U.S. Army, https://history.army.mil. Korean War historical archive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https://www.archives.gov. ............................................ <성인부 1등> The Miracle of Life Wrought by the Wings of Conviction  – In Honorof Colonel Dean Hesse | Mi Jung Bak / 성인부Throughout my long career as a nurse, standing on the front lines where life and death intersect, I have learned that life is a treasure as precious as it is fragile. Today, within this meaningful space of Global Healing Art Therapy—where we strive to mend historical wounds through the power of art—I wish to reflect on the legacy of a true hero: Colonel Dean Hess. He was a man who, as a soldier, exemplified the most sublime height of humanity.In December 1950, the sub-zero temperatures of the Korean Peninsula were more than just a matter of weather. Amidst the desperate chaos of the January 4th retreat, over 1,000 war orphans were left stranded in Seoul. In that tragic moment, when most would prioritize their own safety, Colonel Hess made a decision that resonates with me far beyond any military achievement. Instead of waiting for formal orders, he chose to prioritize the lives of dying children. Through "Operation Kiddy Car," he mobilized 15 transport planes to evacuate these orphans to the safety of Jeju Island. It was the most radiant bloom of life to emerge from the darkest of battlefields.His devotion was never a mere temporary relief effort. He poured his soul into the "Bout One" project, laying the foundation for the Republic of Korea Air Force and personally training Korean pilots. Even after the war, he donated the entire proceeds of his autobiography to build orphanages in Korea. The "Hope Village" he established in Jeju became a cradle of healing, mending the emotional scars of the conflict and planting seeds of dreams back into the hearts of children.As a mother raising two daughters in Los Angeles, I have always emphasized to them that the peaceful lives they enjoy today are not a given. Just as the children Colonel Hess saved grew to become the pillars of modern Korea, his motto, "I Believe I Fly" (Shin-Nyeom-Ui-Jo-In), has become a guiding compass for my daughters, teaching them the value of devotion to others.The freedom we enjoy today is the most valuable legacy, bought by the blood and sweat of our veterans. I now deeply understand that what you protected so fervently was not just territory, but the innocent laughter and future of our children. I will carry your noble sacrifice in my heart forever and pledge to live a life that sows seeds of peace. To Colonel Dean Hess and all the veterans who served: I offer you my eternal respect and deepest gratitude.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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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특집] 가정의 달은 왜 5월일까? 사람과사회
    유난히 가정과 관계날 기념일이 많은 달이 바로 5월이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등이 모두 5월에 집중됐다. 매년 5월 두번째 주일은 모든 미국인들이 어머니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로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 어머니날(Mother's Day)이 국가 기념일로 선포된 배경은 한 여성의 지극한 효심과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어머니날은 1900년대 초 안나 자비스(Anna Jarvis)라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됐다. 1905년 5월 둘째 주 일요일, 안나의 어머니인 앤 리브스 자비스(Ann Reeves Jarvis)가 세상을 떠났다. 안나는 평소 "어머니들의 노고를 기리는 기념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던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기념일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1908년 5월 10일, 안나는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한 교회에서 어머니를 추모하는 첫 공식 예배를 열었는데 이때 그녀는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흰 카네이션 500송이를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이것이 오늘날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풍습의 기원이 되었다. 안나는 어머니날을 국가 공휴일로 만들기 위해 정계와 교계 인사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쓰며 캠페인을 벌였으며1910년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처음으로 어머니날을 공식 휴일로 선포했고, 1911년까지 거의 모든 주에서 이 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마침내 1914년, 미국 의회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1914년 5월 9일, 당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대통령령(Proclamation 1268)을 통해 이를 국가 기념일로 공식 선포했다.윌슨 대통령은 이 날을 "미국 어머니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날"로 규정하고, 관공서와 가정에 성조기를 게양할 것을 권고했다.한국도 이 영향을 받아 1956년 '어머니날'을 제정했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확대 개편했다.초록이 짙어지는 계절의 여왕 5월. 우리 곁을 지켜주는 어머니 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가정의 달'이다.바쁜 일상 속에 잊고 지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온기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그렇다면 왜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하는걸까? 5월에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이 집중된 이유는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행복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으로 5월 5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위해 제정했고 평생 헌신하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날이며 5월 15일은 UN이 제정한 세계 가정의 날로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지정한 국제적인 기념일이다. 또한 5월 21일은 '둘(2)이 만나 하나(1)가 된다'는 의미를 담아 부부의 날로 제정했다.최근 변화하는 가족,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 하겠다. 요즘 가정 모습은 1인 가구, 비혼 가족, 다문화 가족 등으로 매우 다양해 지면서 혈연이나 전통적인 가계도보다 서로를 지지하고 아끼는 '마음의 결합'이 가정의 본질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때이기다 하다.  가정의 달을 뜻깊게 보내는 법단순히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겠다. 하루 정도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겠고 아이들과 함께 편지 쓰기, 가족 신문 만들기, 혹은 가족의 역사를 담은 영화나 책을 함께 보는 활동을 추천한다. 또한 "고마워요", "사랑해요" 같은 평범하지만 강력한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 것이 행복한 가정의 시작이겠다. 가족들과 함께 간단한 나들이를 위해 오렌지카운티(OC) 인근에서 2026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계획된 행사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30년 넘게 이어진 애너하임 어린이 축제 (Anaheim Children’s Festival)가 5월 16일(토) 11:00 AM – 3:00 PM에 애너하임 피어슨 공원(Pearson Park)에서 열리는데 모든 예술 체험 활동이 무료다. 가든그로브 딸기 축제 (Garden Grove Strawberry Festival)는 5월 22일(금) ~ 25일(월)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 열리는데 가든그로브 빌리지 그린 공원(Village Green Park)로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행사 중 하나로, 대규모 퍼레이드, 놀이기구, 딸기 케이크 시식 등이 진행되어 온 가족이 나들이하기 좋다. 미니어처 기차 탑승 (Miniature Train Rides)행사는 5월 17일(일) (매월 셋째 주말) 코스타 메사 페어뷰 공원(Fairview Park)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미니어처 기차를 타고 공원을 둘러볼 수 있어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 인기가 높다. 가족 펀 페스티벌 & 리소스 페어 (Think Together Family Fun at the Park)는  5월 30일(토) 10:00 AM에 산타애나 칼 손튼 공원(Carl Thornton Park)에서 음식, 게임, 공예 활동과 더불어 아동 발달 정보를 제공하는 무료 가족 친화 행사가 열린다. 그외 어머니날 특별 행사 (Mother's Day Events)가 지역별로 다양하게 열리니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보자.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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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특집] 57년만 달을 향해 쏘다 … 왜 다시 달인가? 사람과사회
    달 탐사는 인류가 지구 외의 천체에 직접 발을 내딛거나 탐사선을 보내 연구하는 가장 도전적인 과학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1950년대 냉전 시대의 '우주 레이스'로 시작되어, 현재는 자원 확보와 화성 탐사를 위한 전초기지 건설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1969년 인류가 최초로 달 표면에 족적을 남긴 첫번째 탐사가 '탐험'이었다면 이번 달 탐의 주된 목표는  '거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꼽을 수 있다. 57년전 아폴로 계획이 인류가 달에 갈 수 있음을 증명한 “일시적 방문'이었다면, 이번 아르테미스는 달에 기지를 건설하고 상주하는, 즉 '지속 가능한 정착'을 목표로 한다. 이는 인류의 활동 영역이 지구 밖으로 영구히 확장됨을 의미하는 역사적 분기점이다. 심우주 탐사를 위한 '테스트베드(Testbed)'가 될 이번 탐사의 목적지, 달은 화성으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이다. 달에서 심우주 거주 기술, 자원 채굴, 로켓 연료 생산(물 분해를 통한 수소 확보) 등을 성공시킨다면, 이는 곧 인류가 화성에 도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력을 확보했음을 역사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아르테미스(Artemis)는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의 쌍둥이 누이이자 달의 여신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계획은 '최초의 여성 우주인'과 '최초의 유색인종 우주인'을 달 표면에 착륙시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특정 국가나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우주 탐사를 인류 전체의 보편적 가치로 확대한다는 사회문화적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과거 우주 경쟁이 국가 간의 자존심 대결이었다면, 아르테미스는 민간 기업(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등)과 국제적 협력(아르테미스 약정)을 기반으로 한다.이는 우주가 더 이상 정부 예산만 쓰는 곳이 아니라, '우주 경제'라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는 비즈니스의 무대가 되었음을 상징한다.즉< 아르테미스는 인류가 달을 하나의 '목적지'가 아닌, 더 먼 우주(화성)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고향(Home away from home)'이자 '항구적인 플랫폼'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달 탐사는 크게 세 시기인 초기 탐사, 아폴로 계획, 그리고 현대의 재도전으로 나뉜다.초기 탐사 (1950~6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루나 2호가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충돌)했고, 루나 3호가 달의 뒷면을 처음으로 촬영했다.아폴로 계획 (1969~1972): 미국의 NASA가 주도한 인류 최대의 프로젝트입니다.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딛는 역사적 순간을 만들었다.공백기와 재개 (1970년대 후반~현재): 한동안 주춤했던 달 탐사는 21세기 들어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여러 국가가 참여하며 다시 뜨거워졌다.다시 말해 과거의 탐사가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면, 현대의 탐사는 보다 실질적인 이유를 가진다.  달에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헬륨-3와 희토류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심우주 탐사의 전초기지: 달은 중력이 지구의 1/6에 불과해 화성 등 더 먼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연료 보급소나 기지로 활용하기 적합하며 지구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밝힐 수 있는 '타임캡슐' 역할을 한다. 특히 달의 남극에는 얼음(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상주 기지 건설의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미국 주도의 국제 협력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Artemis) 계획으로  2020년대 중반까지 인류(최초의 여성과 유색인종 포함)를 다시 달에 보내고, 지속 가능한 상주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며 달 궤도에 건설될 우주정거장으로, 달 표면 탐사와 심우주 여행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아르테미스 약정에 서명했으며,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KPLO)**를 통해 달 착륙 후보지 탐색 등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달 탐사는 초기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자존심 대결로 시작되었느데 1959년 루나 2호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도달(충돌)했으며, 루나 3호는 최초로 달 뒷면을 촬영했고 미국의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1972년 아폴로 17호까지 총 12명의 우주인이 달 표면을 걸었다. 그러나 아폴로 계획 종료 후, 막대한 비용 문제와 정치적 관심 하락으로 인해 한동안 유인 탐사는 중단되었다. 현재 인류는 다시 달로 향하고 있다. 이번에는 단순히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상주'가 목적입니다.NASA를 필두로 한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로 2020년대 중반까지 여성과 유색인종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려 하며 달 궤도 정거장인 '루나 게이트웨이(Lunar Gateway)' 건설을 이루고 달 남극의 물(얼음) 자원 확인 및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달은 이제 탐사의 대상을 넘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평가받는다.우리나라도 달 탐사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는데 2022년 발사된 대한민국 최초의 달 궤도선이 있다. 현재 달 궤도를 돌며 지형 관측, 착륙 후보지 탐색, 우주 인터넷 시험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2032년경 우리 기술로 만든 로켓(차세대 발사체)을 이용해 달 착륙선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헤쳐나가야할 난관도 존재한다. 지구 자기장의 보호가 없는 달 표면은 강력한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다. 또한 월면토(Regolith)이라 불리우는 달의 먼지는 미세하고 날카로워 기계 장치를 마모시키고 우주복을 손상시킨다. 낮에는 127°C까지 올라가고 밤에는 -173°C까지 떨어지는 극한 환경을 견뎌야한다. 달 탐사는 이제 국가 주도를 넘어 스페이스X나 블루 오리진 같은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접어들었다. 인류가 달에 마을을 짓고 사는 모습이 머지않은 미래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인류가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은 1969년 7월 20일, 미국의 아폴로 11호 미션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착륙 지점: 달의 '고요의 바다' (Sea of Tranquility)였고 최초의 인물은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두 번째 인물: 버즈 올드린(Buzz Aldrin) - 암스트롱에 이어 약 19분 뒤에 달 표면에 내렸다.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는 달 궤도에 머물며 사령선을 조종하여 동료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왔다.이들은 달 표면에서 약 21시간 30분 동안 머물며 암석 샘플 채취와 과학 실험 장비 설치를 마친 후, 7월 24일 무사히 지구(태평양)로 귀환했다.재미있는 사실은 인류 최초의 '인공물'이 달에 도달한 것은 1959년 소련의 루나 2호였지만, 사람이 직접 내려 탐사한 것은 아폴로 11호가 처음이다. 
    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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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특집] 사순절! "부활절을 기다리며" 사람과사회
    믿는 사람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일년 중 가장 크게 기념하는 성탄절보다 더 중요한 절기가 바로 부활절이다. 이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날이며, 우리의 믿음은 바로 죽음-부활의 신앙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교회마다 이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동안 사순절을 지킨다. 특별 새벽기도, 다니엘 금식기도 등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사순절 묵상을 진행한다. 올해 부활절은 4월5일이다. 사순절 기간동안  우리가 기억할 날들을 알아보자.     (편집자 주).......................................................................................................................................................................2026년 올해 부활절은 4월6일이다. 그렇다면 부활주일은 어떻게 계산 될까. 부활절은 음력을 기준하여 해마다 다르다. 춘분 이후 만월 다음 주일이다. 부활절이 해마다 바뀌는 것을 아는 기독인들은 많다. 그런데 부활절이 언제인지 정확히 아는 기독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부활절이 모두에게 익숙한 양력 달력으로 정해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음력 달력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활절을 찾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계산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다.20세기에 와서야 통일된 부활절 날짜기독교가 달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지켜 온 절기 중 가장 오래된 절기가 부활절이지만 부활절을 계산하는 방법이 통일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부활절 날짜에 대한 다툼은 2~3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들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교회와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교회로 나누어졌다.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교회는 니산월(유대인의 달력으로 태양력이며 3, 4월이다) 14일을 부활절로 고정하여 지켰다. 반면에 그레고리력은 니산월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부활절을 지켰다. 전자는 유대인의 유월절을 근거로 한 것이며, 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수백 년 간 부활절 날짜로 인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로마교회가 한 발 물러서면서 논쟁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몇몇 교회에서는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율리우스력을 20세기까지 사용하던 동방정교회가 조금씩 그레고리력으로 바꾸게 되면서 부활절 날짜는 통일되었다.그레고리력에 근거한 부활절은 ‘춘분 다음에 오는 만월 다음 주일이 부활절’이다. 이를 쉽게 알기 위해서 춘분과 만월을 알아야 한다. 다행히도 춘분은 태양력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춘분은 3월 21일로 매년 바뀌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다.만월(滿月)이라 함은 보름달이 되는 것을 말한다. 보름달이 되는 날을 찾기 위해서는 태음력 달력을 봐야 하는데, 이 또한 다행히 매달 15일에 보름달이 된다. 즉 춘분인 3월 21일을 찾고, 춘분 다음에 오는 음력 15일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음력 15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찾으면 되는데, 이 주일이 바로 부활절이다.부활절은 모든 기독인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날이다. 영혼의 구원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부활 소망까지 이어지는 믿음의 끈이요, 신앙고백의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기며 앞선 마음으로 준비하는 부활절이 되어야 하겠다.이제 사순절을 알아보자. 2026년 사순절은 2월 18일부터 시작된다 금년 사순절은 2월 18일에 시작된다. 사순절은 단순히 단 음식을 끊거나 가족 전통을 따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순절은 신앙 안에서 성장하고 영적인 삶을 새롭게 하는 기회이다. 평생 사순절을 지켜왔든, 올해 처음 시작하든, 잠시 시간을 내어 사순절을 준비해 보기를 권한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 토요일까지 40일간(주일 제외)을 말하며, 부활절은 부활 주일이라고도 한다. 사순절은 종종 준비의 시간이며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이 기간은 개인적인 성찰을 통해 성금요일과 부활절을 맞이할 마음과 정신을 준비하는 시간이다.사순절 기간 동안 기념해야 할 중요한 날들재의 수요일: 2026년 2월 18일(수)재의 수요일은 사순절의 첫날이다. 이마에 검은 십자가 모양의 재가 묻어 있는 사람들을 봤을지도 모른다. 재의 수요일 예배에서 사용되는 재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슬픔과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상징한다. 재의 수요일’은 ‘참회의 수요일’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불린 이유는 이날 예배에서 재(Ash)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재’는 참회와 회개, 유한성, 정화와 순수, 농경문화에서는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위한 밑거름 등을 의미한다. 재의 수요일부터 전례색은 보라색으로 바뀐다.종려주일/고난주간3월 29일은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 또는 고난주일이다. 종려주일은 부활절을 1주일 앞둔 주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등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돼 있다(마 21:1-11, 막 11:1-11, 눅 19:28-38, 요 12:12-19).고난주간은 영어로 보통 Holy Week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고난(Passion)에 초점을 맞출 때는 Passion Week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난주간 다음주는 종려주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을 때, 사람들은 Palm tree 가지를 흔들며 기뻐 했다. 그날은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그 주간부터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며,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한 수난의 길을 가셨다.종려주일 다음 날부터 부활 직전까지인 3월 30일부터 4월 4일까지는 고난주간(苦難週間, passion week)이다. ‘수난주간(受難週間)’으로도 불리는 고난주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3월 30일부터 4월 2일까지는 보라색과 붉은색, 예수께서 죽임당하신 4월 3일과 4일은 검은색이다. Palm Sunday (종려주일)는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 번째 일요일이다.  성목요일: 2026년 4월 2일(목)Maundy Thursday / Holy Thursday (세족 목요일/성목요일)은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기념하는 날로  성금요일 전날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성금요일: 2026년 4월 3일(금)4월 3일은 주님이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성금요일(聖金曜日, Good Friday)로 이날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성스러운"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인류를 위한 희생이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잘못이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다음날은 일반적으로 Holy Saturday (성토요일)라 부르느데 그날이 예수님이 무덤에 머무신 날이다.부활절: 2026년 4월 5일(일)4월 5일은 부활절(復活節, Easter)이다. 2세기 중엽부터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로 자리잡은 부활절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남을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는 141년 전인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을 밟았던 부활절과 날짜가 같다.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신 것을 기쁨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죽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사순절이 40일인 이유는?성경에서 모세(출애굽기 34:28), 엘리야(열왕기상 19:8-9), 그리고 예수님(마태복음 4:1-2) 모두 40일 밤낮으로 금식하는 경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이 끝날 무렵, 그들은 앞으로 닥칠 도전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패턴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 데서 유래됐다.고난주간은 영어로 보통 Holy Week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고난(Passion)에 초점을 맞출 때는 Passion Week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난주간 다음주는 종려주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을 때, 사람들은 Palm tree 가지를 흔들며 기뻐 했다.그날은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그 주간부터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며,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한 수난의 길을 가셨다. Palm Sunday (종려주일)는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 번째 일요일이고 Maundy Thursday / Holy Thursday (세족 목요일/성목요일)은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기념하는 날이다. Good Friday (성금요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로 그 다음날은 일반적으로 Holy Saturday (성토요일)라 부르느데 그날이 예수님이 무덤에 머무신 날이다.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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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제4차 21인 차세대목회자 새벽기도회 성료 사람과사회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제4차 21인차세대목회자초청 새벽기도회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총 21일에 걸쳐 진행됐다. 이번 새벽기도회는 2022년 처음 개최 된 후 올해까지 4회째 이어지고 있다. 오렌지카운티 지역을 중심으로 개척교회, 혹은 미자립교회를 섬기고 있는 30대에서 50대까지의 차세대 목회자들 초청, 성도들이 새벽기도회를 드리며 각 강사들의 말씀을 통해 도전 받고 서로를 격려하는 취지로 마련된 후 해를 거듭할 수록 그 의미가 뚜렷해 지고 있다. 30대 회장 심상은목사가 제1차부터 3차까지 이끌었고 올해는 34대 회장 이창남 목사가 주축이 되어 OC지역 교계 기관과 협력, 함께 상생하고 서로 격려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며 영적대각성의 도전을 주는 기도회로 성장했다.올해 초청 강사는  7월28일 월 신경섭목사(어노인팅교회), 7월29일 화 제임스구목사(글로벌 비전교회), 7월30일 수 이원철 목사(LA마가교회), 7월31일 목 박은성 목사(Acts Global Church), 8월1일   금 이상훈 목사(한마음교회), 8월2일  토  김종규목사(OC제일장로교회), 8월4일 월  신형석 목사(엎드림교회), 8월5일 화 신유호목사 (예수생명교회), 8월6일 수 유인선목사(엘피스 장로 교회), 8월7일 목 백동진 목사(미러클랜드침례교회), 8월8일 금 김경목목사(어바인열린 교회), 8월9일 토 정성택 목사(얼바인중앙침례교회), 8월11일 월 박 유 목사(새빛사랑교회), 8월12일 화 송 일 목사(애나하임한인장로교회), 8월13일 수 문두진 목사(남가주임마누엘교회), 8월14일 목 신성옥 목사(재건나성교회), 8월15일 금 이사야 목사(New Start Community Church), 8월16일 토 백창호 목사(오렌지힐교회), 8월18일 월 이병열 목사(드림교회), 8월19일 화 조유진 목사(풀러톤영락교회), 8월20일 수 이찬영 목사(OC마가교회) 였다. 21일에 걸친 새벽기도회는 그 다음날 목회자세미나를 하이라이트로 마무리하게 되는데 올해 강사로는 한기홍목사(은혜한인교회), 강준민목사(새생명비전교회), 이상명총장(프레스티지대학), 김종국총장(에반겔리아 대학)이 나섰다. 목회자 세미나는 OC교협 총무 조진용목사(바인교회)의 사회로 부회장 최국현목사(은혜와진리교회)의 대표기도가 있었고 지난 4년간 대회장으로 섬긴 한기홍목사(은혜한인교회)가 환영인사를 했다. 한 목사는 오늘날 우리가 봉착한 목회적 위기의 해법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복귀하는 것으라 믿는다면서 영적 리더는 위기를 먹고 자란다는 말 처럼, 위기는 리더를 성장 시키고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첫 강사로 나선 강준민목사(새생명비전교회)는 “목회자의 영성과 자기관리” 라는 주제로 50분간 강의했고 2강 강사인 이상명총장(프레스티지대학)은 “인공지능시대의 미래 목회와 신학과제” 라는 주제로, 3강은 선교사 출신인 김종국총장(에반겔리아대학)이 “선교적 관점에서 본 디아스포라 목회의 도전과 영적 돌파”, 그리고 마지막 강의는 한기홍목사(은혜한인교회)가 “건강한 교회, 행복한 목회자의 영성”에 대해 다루었다. 50분씩 걸친 각 강의 뒤에는 이번 새벽기도회 강사 중 3명의 목회자가 이번 기도회에 참여한 경험과 도전에 대해 간증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날 세미나는 34대 교협 회장인 이창남목사(주님의손길교회)가 참가 목회자들과 함께 목회와 지역사회를 영적 각성을 위한 기도제목을 놓고 합심 기도 한 후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이번 4차 강사들은 OC교협과 교계의 돈독하고 건전한 연합과 건전한 연합 활동, 선한 영향력 등에 강한 도전을 받는다면서 8월31일 주일 저녁, 강사중 1인이었던 오렌지힐교회 백창호목사 교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참석, BBQ로 저녁식사를 하고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찬양과 간증의 시간을 통해 형제가 연합하며 서로 세워져 가는 은혜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내년도 21인차세대목회자 초청새벽기도회는 2026년 7월부터 시작하게 된다. 관련 문의는 OC교협으로 하면 된다. [이 게시물은 사람과사회님에 의해 2025-09-09 10:10:24 종교에서 이동 됨]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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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제1회 글로벌힐링아트 청소년 에세이 대회, “자유는 공짜가 아니었다” 사람과사회
    1등 수상작 (Shinjung Woo 우 신정, West Ranch High School, 12th To Korean War Veteran)First,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 and sincere thanks to the 36,591 veterans who fought for my country during the Korean War. Without their sacrifices, Korea might not be a free nation today or perhaps might not even exist.   While learning about the Korean War, I came across a story of one veteran that touched my heart, and it was Ted Williams’s. I discovered that Ted Williams was not just one of the greatest baseball players in history, but also an amazing fighter pilot who risked his life in battles for freedom. It deeply moved me to know that, even though he was a world-famous athlete, he set aside a comfortable, luxurious, and recognizable life to serve his country during a perilous time.  In school classes, I was told the Korean War is sometimes called a “Forgotten War.” This was because many people in America did not know much about Korea, and also because the soldiers were not well-received when they came back home. I think that makes the sacrifices of Ted Williams and other veterans even more meaningful, because their decision was not for recognition, but for something greater—freedom and peace.  If I were in Ted Williams’s situation, choosing to go to war, I’m not sure if I could really put down all the fame and the recognition from a safe world. But he did. He made a choice that eventually led me to write an essay about him. It would have been so easy to stay in the spotlight and continue the life that all people dream about. But he did not take the easy way. This choice might have been a shock to the fans and especially painful for his loved ones. His action reminds me that freedom comes from people who are willing to give up everything for others. It also made me wonder myself, ‘Am I ready to give up everything for others?’  As a fan, if Ted Williams had not gone to war, he could have hit even more home runs and broken more records. But I believe that the war could have been way worse if veterans like him had not fought as if the land they were stepping on was their own country. Who knows? If his 39 flight missions did not exist, maybe we might have even lost the war!  Today, Korean students like me can live peacefully, study, and dream about the future because of the sacrifices of Ted Williams and other heroes. I will never forget this, and I will be ready to give up everything for others, like he did for us.   Thank you so much, Mr. Williams, and all the veterans. I will always remember you.   Sincerely ..................................................................................................................................2등 수상작 (Leere(Joy) Jang 장 이레, Sunny Hills High School)Dear American veterans of the Korean War, On June 25, 1950, war erupted on a peninsula most Americans had never seen. You crossed oceans to defend a country and a people you did not know, believing that freedom was worth the risk. Because of your courage, South Korea stands today as a thriving democracy—and my generation gets to dream freely. I’m writing to thank you. You were young—many barely older than I am now—yet you left home, family, and certainty to fight in brutal winters and unforgiving terrain. You faced fear, scarcity, and loss, and still kept moving forward. You did not fight for glory or recognition; you fought so that strangers halfway around the world could live without tyranny. That kind of selflessness is hard to comprehend—and impossible to forget. The cost you bore was immense. So many never made it home; many who did carried invisible wounds. When I study the history of those years and think about the bitter cold, the long nights, and the friends you lost, I realize how much I owe you. The Korea I see today—innovative, vibrant, and free—was built on your sacrifice. Sometimes I try to picture what your days looked like—the weight of a pack digging into your shoulders, the sting of winter wind during a long watch, a creased letter from home tucked close to your heart. The challenges I face now—exams, late buses, awkward first attempts at leadership—are small beside what you endured. But your service doesn’t make my struggles meaningless; it gives them direction. Because you stood firm, I get to grow up where a young person can speak freely, study what they love, serve their community, and dream without fear. That ordinary freedom is your extraordinary gift, and I promise to use it well. Your example challenges me. You didn’t fight so that I could live comfortably; you fought so that I could live responsibly. I want to honor you by the way I live: by working hard in my studies, standing up for what is right, and serving others who feel unseen. I will keep learning about the war you fought and share your stories with people my age who might not know them—so that your courage is remembered not just in monuments, but in our choices. Thank you for proving that ordinary people can do extraordinary things when they believe in something larger than themselves. I will carry your legacy with me and try to meet the freedom you preserved with gratitude, integrity, and service. With deepest gratitude, ..................................................................................................................................3등 수상작 (Kate Kim  케이티 김, 12th grade / Sunny Hills)  Dear Richard DeWart, I want to begin by telling you that I’m not very good at writing letters, especially lengthy ones like this. So if it’s alright with you, I’ll start by talking a bit about myself. I’m 17 years old, the same age you were when you made the brave decision to enlist in the United States Navy. Personally, I’m terrified of just about everything: bugs, the dark, heights, the ocean, public speaking, and even my mom’s mysterious, stomach-turning smoothies. So I can’t even begin to imagine how much courage it must have taken for you to make that decision. And yet, here I am, curled up with my stuffed dinosaurs, writing this letter to you about your bravery. As I sit here writing, I remember that I’m only two months away from adulthood myself. And it makes me wonder how you felt when you first entered battle at just 18 years old. Were you scared? Eager? Overwhelmed? I probably would have panicked on the spot. And maybe you were scared too. No, you probably were. It’s almost laughable to think that you weren’t scared to go into battle. And yet, reading stories about you on the Internet, I can’t help but doubt that you were. For instance, I read about how you gave your sweater to a fellow soldier after hearing him complain about the cold. I don’t think I could have done that on a battlefield where everyone must have been freezing and starving, especially when I can barely bring myself to give up the last slice of pizza to my brother. I also read that you checked on the health of the Marines every night and hoped to become a doctor someday. I want to be a doctor too. And yet I wonder: could I have really forced my exhausted, starving, and battle-weary body to check on others every single night? I’m not quite sure. As I kept reading, I came across accounts of how, despite your own injuries, you ran into the line of enemy fire to rescue your wounded comrades. At first, I couldn’t understand it. Part of me even thought you had lost your mind. But then, as I pictured myself in your shoes, I began to understand the depth of your courage and the strength it must have taken. You were wounded yourself, yet you chose to run again and again into danger to save your fellow Marines. You did not hesitate. Even as enemy fire rained down, you focused on what mattered most: saving lives. In your final act, trying to reach one more wounded Marine, you made the ultimate sacrifice. That kind of courage leaves a permanent mark on the world. You didn’t just serve; you exemplified what it means to be a healer in the midst of war. As an aspiring doctor, I can’t help but admire your dedication and selflessness. So, here are my final words to you, Hospitalman De Wert — courageous medic and true hero of the Korean War. Thank you. Your name and your sacrifice will never be forgotten. Through your bravery, you helped Kate Kim - 12th grade / Sunny Hills preserve the freedom and peace of Korea, and your legacy lives on in every medic who follows in your footsteps, and in every life saved by someone inspired by your story.Your story has made me think more deeply about what kind of doctor — and person — I want to be. With the deepest respect and gratitude,  Kate Kim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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