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병학컬럼] 소통은 서로 다른 사람을 같은 무게로 존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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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학 목사(주님의 교회 담임, 그레이스 미션 대학교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교수).
“음악은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사랑받아야 한다.”
BTS(방탄소년단, 한국 가수 그룹)가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기로 하며 전한 말이다. 단순히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아시아 음악을 별도 부문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과연 공정한지,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제도가 오히려 또 다른 경계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 문제 제기다.
그래미는 아시아 음악의 성장과 영향력을 인정하고 더 많은 아티스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새로운 부문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취지만 보면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다. 그동안 주목받기 어려웠던 음악과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무대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별도의 상을 만든다는 것은 더 많은 인정을 뜻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당신들의 자리는 따로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기존의 기준은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칸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과연 진정한 포용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은 음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분류한다. 출신 지역, 학력, 세대, 성별, 국적, 정치 성향까지 수많은 기준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편의를 위한 구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기준이 사람을 설명하는 이름표가 된다. 이름보다 범주가 먼저 보이고, 한 사람의 삶보다 그가 속한 집단이 먼저 읽힌다.
사람을 나누는 일은 쉽다. 하지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분류는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지만, 그 과정에서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는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란 차이를 없애는 곳이 아니라, 차이가 있어도 같은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BTS의 선택이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들이 더 많은 수상 기회보다 평가의 원칙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별도 부문이 아시아 음악의 가시성을 높이고, 아직 세계 시장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신인들에게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만이 아니다. 그 제도를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환영의 공간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진짜 소통은 "좋은 뜻이었다"는 설명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대가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 그 감정 뒤에 어떤 경험이 쌓여 있는지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다. 장애인, 이주민, 청년, 노인, 지역 주민을 위한 별도의 정책과 공간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중심에서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배려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국 함께 설 수 있는 공간을 넓히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음악은 원래 경계를 넘어선다. 좋은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먼저 국적부터 묻지 않는다. 가사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슬픔과 기쁨은 전해진다. 진심은 번역보다 빠르고, 감동은 국경보다 넓다. 아마 BTS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특별한 대우를 원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구분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BTS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는 앞으로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던진 질문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누군가를 여전히 예외로 구분하고 있지는 않은가. 환영한다고 말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문턱은 그대로 두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은 이름으로 불릴 때 한 사람으로 존중받는다. 범주로만 불릴 때는 쉽게 일반화되고 소비된다. 음악도 다르지 않다. 어느 지역의 음악이기 전에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받을 때, 예술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소통은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을 같은 무게로 존중하는 일이다. 그런 시선이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누군가만을 위한 별도의 무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설 수 있는 무대 자체를 더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논란의 핵심은 상의 개수가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가치를 국적이나 언어, 인종 같은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까.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라고 가르쳐 왔다. 그렇기에 누구도 '주류'와 '비주류'라는 잣대로 구분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다름은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선물이다. BTS가 던진 질문 역시 결국 음악을 넘어 우리 사회를 향한다. 우리는 한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범주를 떠올리는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존엄한 존재로 마주하는가. 진정한 소통은 바로 그 시선이 바뀌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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