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발행인의 시선] 사람과사회 사이에서(5) 계절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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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다. 꽤 덥다.
갑작스레 찾아온 남가주의 폭염을 피해 하루쯤 도망가려 빅베어로 향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갈수록 온도가 내려간다. 해발 6,700피트가 넘는 호숫가에 도착해 차 문을 여니 역시 공기가 다르다. 아래 동네와 달리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기대한 단풍은 아직 이르다. 빅베어의 가을이 제대로 가을 색을 입기까지는 10월 중순쯤은 되어야 할 모양이다.
허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나뭇잎 끝에 노란빛이 돌고, 성미 급한 나무 몇 그루는 벌써 붉고 노란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가을은 오고 있구나. 세상은 요란해도 계절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길을 간다. 아무리 여름이 뭉기적 버텨도 가을은 온다. 그리고 또 겨울이 올 것이다.
사람도 세상도 정치도 그러하겠다.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한때는 쉽게 건드리기조차 어려웠던 이름과 상징들이 있었다. 보수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고, 진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었다.
두 사람이 남긴 정치적 유산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박정희는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성과와 함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공존하고, 노무현은 그의 죽음 이후 한 정치인을 넘어 진보 진영의 강력한 정치적 상징이 됐다. 그의 이름을 계승한다는 정치인들이 대통령이 되고 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런데 이제 묻게 된다.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정치적 신화들도 다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 앞에 영원한 정치적 성역은 없다. 한 시대를 움직인 명분도 결국 그 결과로 평가받는다.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무엇을 남겼느냐가 더 오래간다.
그렇다고 진보의 퇴조가 곧 보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남의 계절이 저문다고 내 계절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보수 재건’이라는 말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 특히 한동훈이 말하는 보수 재건에 눈길이 간다. 그가 보수의 미래가 될지, 또 어떤 정치적 평가를 받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에 머물러 서로 배신자를 찾고 더 세게 싸우는 것만으로 보수가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는 공감한다.
보수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변한다는 것이 지켜야 할 가치까지 버린다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자유와 책임, 법치와 상식은 지키되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낡은 것은 내려놓고, 다음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도 변한다. 예전에 확신했던 생각이 달라질 때도 있고, 사람을 보는 눈도 세월과 경험에 따라 바뀐다. 나이 들수록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일이 조심스럽다.
다만 바라는 것은 있다. 변하되 더 나은 쪽으로, 더 올바른 쪽으로,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조금 더 유익한 쪽으로 변했으면 한다. 사람도, 정치도, 우리가 몸담은 사회도 그랬으면 좋겠다.
성경은 말한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살아갈수록 참 무서우면서도 정확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무엇을 심었는지는 결국 시간이 보여준다.
빅베어에서 내려오는 길, 산 아래는 여전히 더웠다. 그러나 이제 안다. 이 더위도 지나 갈 것을…
계절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정치도 변한다.
It is what it is.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바라기는 그 변화가 조금 더 나은 쪽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視線)도 그렇다. 10월, 계절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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