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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뉴스] 트럼프 참석행사 총격 용의자, 법정서 무죄 주장 사람과사회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출입기자협회 만찬 장소 바로 앞에서 총격 사건을 벌인 용의자가 11일(현지시간) 법정에서 자신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사건 용의자인 콜 토머스 앨런(31)의 변호인인 테지라 아베 변호사는 이날 워싱턴DC 연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앨런에게 적용된 대통령 암살 미수와 연방 공무원에 대한 공격, 총기 관련 법률 위반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사건 현장에서 체포돼 구속상태인 앨런은 오렌지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날 직접 발언하지는 않았다.앨런은 지난달 25일 밤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만찬이 열린 워싱턴DC의 워싱턴 힐튼 호텔 내 만찬장 근처의 보안검색 구역에서 산탄총과 권총, 칼 등으로 무장한 채 보안검색대를 돌진해 통과한 직후 당국에 제압됐다.앨런은 당시 총기를 발사해 보안 요원 1명이 맞았으나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던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았고, 만찬장에 있던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 당국자 등 참석자들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다.그가 사건 직전 가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요인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표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암살 미수 등 혐의로 기소됐다.앨런 측은 이번 사건을 관할하는 토드 블랜치 법무장관 대행과 제닌 피로 워싱턴DC 연방 검사장, 그리고 피로 검사장이 이끄는 워싱턴 DC 연방 검찰청 전체에 대해 기피 신청을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블랜치 대행과 피로 검사장이 당시 만찬에 참석했기에 앨런의 잠재적 타깃이었을 수 있는 만큼, 이 사건과 관련한 객관적인 제3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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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45
    [미국뉴스] 美항소법원 '10% 글로벌관세 무효' 1심 판결 효력 일시정지 사람과사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부과한 10% 글로벌 관세가 무효라는 미 연방국제통상법원(CIT)의 판결에 상급 법원이 잠정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연방 순회항소법원은 12일(현지시간) 무역법 122조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10% 글로벌 관세가 위법하다는 CIT의 판결 효력을 일시 정지했다.CIT는 지난 7일 무역법 122조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라며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10% 글로벌 관세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음날 항소했다.트럼프 행정부는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2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하다고 판결한 뒤 '대체관세' 도입 차원에서 우선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10% 글로벌 관세를 매겼다. 이 관세는 7월 하순까지 150일간만 유지될 수 있어서 트럼프 행정부는 궁극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거쳐 새 관세를 도입함으로써 상호관세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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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44
    [OC지역뉴스] 美 신자10명 중 7명, 개인적 예배, 찬양등 감사시간 가져 사람과사회
    대부분의 교회 신자들은 하나님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계획하지 않은 순간에도 종종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험을 하게된다. 대부분의 교회 신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애쓰며, 계획하지 않은 순간에도 종종 하나님과 마주하게 된다. 최근 라이프웨이 리서치의 제자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의도적이든 자발적이든 기도와 예배는 모두 하나님을 찾는 행위의 일부이며 하나님을 찾는 것은 신자들이 영적 성숙에 이르는 과정을 측정하는 여덟 가지 지표 중 하나라고 밝히고 평균적인 교회 신자는 하나님을 찾는 행위에서 100점 만점에 78.5점을 받아, 이 지표들 중 1위를 차지했다. 라이프웨이 리서치의 '제자도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개신교 신자 10명 중 약 7명(69%)이 적어도 일주일에 몇 번씩 개인적인 예배, 찬양 또는 감사 시간을 갖는다고 답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그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신 구속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의 여정에서 다른 여러 측면들보다 하나님을 찾는 데 가장 뛰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열망과 실천이 없다면, 그분을 따르는 다른 측면들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라고 라이프웨이 리서치의 스콧 맥코넬 전무이사는 말했다.미국 개신교 신자 10명 중 약 7명(69%)은 적어도 일주일에 몇 번 개인적인 예배, 찬양 또는 감사 시간을 갖는다고 답했으며, 40%는 매일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약 4분의 1(25%)은 의도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14%), 한 달에 몇 번(7%), 또는 한 달에 한 번(3%) 특정한 시간을 따로 마련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시간을 거의 또는 전혀 갖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6%에 불과했다.이러한 수치는 2019년 라이프웨이 리서치 연구 결과 와 일치한다. 당시 응답자의 67%는 정기적으로 또는 적어도 일주일에 몇 번씩 개인적인 시간을 따로 마련한다고 답했고, 24%는 가끔 또는 그보다 드물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9%는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2012년 라이프웨이 리서치 연구 결과와 비교하면, 교회 신자들 사이에서는 의도적으로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비율이 더 높다. 2012년 연구 에서는 54%가 정기적으로, 30%가 가끔, 17%가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또한, 교회 신자 5명 중 4명(79%)은 하루 중 언제든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기도한다고 답했으며, 이 중 41%는 이에 대해 매우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8%, 잘 모르겠다고 답한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2019년(78%)과 2012년(75%)에도 비슷한 비율의 신자들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맥코넬은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그들이 종종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데서 드러난다. 또한 그들은 하루 일과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교회 신자들은 의도적이든 즉흥적이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정기적으로 개인적으로 찬양과 감사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대다수(56%)는 이것이 매일 행해진다고 답했고, 22%는 일주일에 몇 번, 11%는 일주일에 한 번, 6%는 한 달에 몇 번, 3%는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2%는 거의 또는 전혀 행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대부분의 교인들은 하나님을 찾으면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존귀하게 하기를 소망하며 그것이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라고 말한다.미국 개신교 신자 5명 중 4명(80%)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자신의 삶을 바쳤다고 답했으며, 그중 44%는 강력히 동의한다고 밝혔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소수(5%)이고, 15%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답했니다마찬가지로, 응답자의 71%(70%)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답했으며, 이 중 36%는 이에 강력히 동의한다고 밝혔으며 약 10%(10%)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19%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답했다.맥코넬은 “성경과 기독교인들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10명 중 8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헌신하고 있으며, 거의 같은 수의 사람들이 이를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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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43
    [OC지역뉴스] AI입문과 AI로 유튜버 되기 무료 특강 사람과사회
    오렌지카운티 한인회에서 조한희 박사를 강사로 AI입문과 AI로 이미지만들기, 동영상 만들기 유튜버되기등 무료강연을 진행한다. 조박사는 방송영상 전공자로 CF감독등으로 활동해왔다. ·일시: 5월 18일 (월)·시간: 오후 3시 ~ 6시 ·장소: 오렌지카운티 한인회관 9876 Garden Grove Blvd, Garden Grove, CA 92844·회비: 무료           *준비물: 노트북, 마우스, 스마트폰*예약문의: 선착순 30명 (714) 530-4810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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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42
    [한인사회소식] 6월2일 예배선거, 한인정치인들 유세에 박차가해 사람과사회
    영김 연방하원의원은 최근 다가오는 6월 예비선거를 앞두고 선거사무실을 개소하고 관계자들과 함께 기자 회견을 가졌다. 영 김 의원은 가주40지구를 대표하는 연방하원의원으로 2020년 처음 연방하원에 당선 된 이후 2024년까지 3선에 성공하면서 한국계 여성 최초의 3선 연방 하원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이제 4선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 인천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령인 괌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친후 LA로 이주해 USC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남편인 찰스 김회장과는 대학 선후배로 한미연합회에서 활동했고 오렌지카운티 지역 친한계 의원 에드로이스 의원의 보좌관으로 처음 정치에 발을 디뎠다. 한동안 한국과 미국의 정치소식을 전하는 방송인으로도 활동했으며 2014년 캘리포니아 65지구 가주하원의원에 선출됐지만 2016년, 2018년 낙선 후, 에드로이스 의원이 은퇴하면서 그 자리를 물려받아 2020년 연방하원에 도전장을 내고 당선됐다. 영 김 의원은 2023년부터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 관계 및 아시아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합리적 보수로 경제 정책이나 이민 문제 등에서 공화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동성애 등 사회 문제에서는 성경적 가치관에 기초를 둔 전통적인 보수 가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또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을 직접 발의하는 등 한국 관련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미국내 생존하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에드 로이스 전 하원 외교위원장의 보좌관으로 20년 넘게 활동하며 쌓은 풍부한 외교 및 지역구 관리 경험이 강점으로 꼽히며 대표하고 있는 오렌지카운티 지역의 한인교계와도 긴밀하게 연계하고 있다. 영김 의원은 이번에 주한대사에 지명된 미쉘 박 스틸의원과 젊은 시절 부터 수 십년의 친분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주변 지인들에 잘 알려져 있다.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에 도전장을 내민 샘신목사의 행보도 눈에 뜨인다. 정계 진출은 처음인 샘신목사는 불과 두 달전 LA공화당지부로 부터 민주당 상원의원의 은퇴로 공석이 되는 26지구에 출마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한 달여를 기도하면서 결국 출마결정을 내렸다. 경찰과 목회자로써 섬김의 44년 활동을 이제 공동체 회족을 위해 헌신하고자 결단하고 ”캘리포니아 주상원 26지구에 출사표를 던진 샘 신(한국명 신상훈·사진) 후보는 자신의 삶을 ‘섬김의 연속’이라고 정의했다. 1958년 의정부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친척들의 손에 맡겨져 성장하면서 그 시절의 상처가 오히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고백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모의 주선으로 알래스카의 한 폴란드계 가정에 입양돼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문화 속에서 ‘Sang Masog’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됐다.  “모든 것이 두려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충격 속에서도 묵묵히 학업을 이어갔고, 고등학교를 마쳤다.졸업 후 그는 미 육군에 입대해 헌병으로 복무했다. 이후 앵커리지 경찰국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공직의 길에 들어섰다. 특히 마약 범죄를 단속하는 사복 경찰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데 헌신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남가주로 이주한 그는 샌타애나 경찰국 갱 단속팀과 특수기동대(SWAT)에서 근무하며 더욱 치열한 현장을 경험했다.그는 경찰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조직 내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했고, 오히려 남들이 기피하는 부서에 자원하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샘 신 후보는 “힘든 곳일수록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21년의 공직 생활을 마친 그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목회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현재 그는 LA 한인타운 버몬트와 1가·2가 사이에 위치한 다민족 교회 ‘샘 중앙 커뮤니티 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며 23년째 상처 입은 이웃을 돌보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2025년 남가주 기독교협의회 회장으로 재직하며 18만 달러를 모금해 LA 산불 피해자들을 도운 일은 그의 ‘행동하는 신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수개월간 재해민 구조에 한결같은 열심으로 주변을 감동시켰다. 샘신 목사는 미전역에 약 7천명이 소속된  한인 청소년 단체인 화랑청소년재단 회장으로서 차세대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샘신목사는 공화당 관계자들이 “목회자로서 무너진 가정을 회복하고, 부모의 권리를 지켜달라는 부탁이 마음에 남았다”고 고백한다. 3월 2일, 등록 마감 직전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40명의 서명이 필요했지만, 단시간에 450명이 동참하는 뜻밖의 지지를 받았다. 26지구는 LA 한인타운을 비롯해 리틀도쿄, 차이나타운, 필리피노타운 등 다양한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포함된 초대형 선거구다. 약 10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히스패닉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아시아계는 약 12%, 그중 한인은 7% 수준이다. 그는 “이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묶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현재 코리아타운 플라자에 선거 사무소를 마련한 그는 ‘Sang (Sam Shin) Masog’이라는 이름으로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정당을 떠나 가정과 안전은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라며 “소상공인을 살리는 데 있어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오는 5월 4일부터 우편투표가 시작되고, 6월 2일 예비선거가 치러진다. 목표는 단 하나, “한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탑2에 올라 11월 결선에 진출하는 것”이다.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공화당 후보로 도전하는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정치가 목표입니다.”“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싶습니다. 제가 그 작은 디딤돌이 되겠습니다.” 샘신목사의 고백이다. 샘신목사는 6월2일 예비선거 투표지에 본인의 이름은 Sang "Sam Shin" Mosag 으로 기록될 것이며 한글 표기는 상신 이 될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정치참여, 보수 가치, 지역사회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Los Angeles County 공화당 청년 및 젊은 전문인 정치단체로 부터 후보 지지 선언을 받았다면서 가주 26지구 상원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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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41
    [특집] 제2회 한국전 참전용사에게 바치는 청소년에세이대회 열려 사람과사회
    올해로 두번째 열린 청소년 에세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글로벌힐링아트(대표 김은미)는 한인 청소년들이 한국전참전용사기념비가 있는 풀러톤에서 제2회 G.H.A.T 청소년 에세이 대회 시상식이 뜻깊게 열렸다고 밝혔다.글로벌 힐링 아트 테라피(Global Healing Art Therapy, GHAT)는 예술을 통해 개인의 감정을 회복하고 지역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비영리 단체로 예술, 음악,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창의적 매체를 활용하여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문가를 위한 임상 치료가 아닌, 예술을 기반으로 한 비임상적 커뮤니티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사회 봉사로 노숙인(홈리스)을 대상으로 한 아트 봉사 및 수제 아트 키트 제공, 지역사회 캘리그래피 버스킹 등을 통해 따뜻한 메시지를 나누기도 한다. GHATS는 '자녀의 미래를 세우는 시편 기도회(자.미.세)'와 같은 모임을 통해 부모의 마음 회복과 자녀를 위한 영성 활동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리버데일(Riverdale) 지역에 Global Healing Creative Arts Therapy Studio를 운영하며, 워크숍이나 그룹 세션을 위한 공간 대여 서비스도 제공한다. 글로벌 힐링 아트는 미국 연방정부에 등록된 501(c)(3) 비영리단체로, 지역사회 연결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중이다. 김은미 대표는 공식 웹싸이트에서 “우리 단체는 청소년들이 예술적 봉사활동과 창의적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자신감과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면서 커뮤니티 센터, 문화기관 등과 협력하여 청소년들이 사회적 책임감과 리더십을 경험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예술 기반 봉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저희는 예술과 나눔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봉사를  통해 정신적웰빙과 사회적 회복력을 키워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상식 행사는  "California Art University Student Ensemble"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시작됐는데  참전용사 기념비 앞에 울려 퍼진 미국 국가와 애국가는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경건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총 35명의 참가자가 정성껏 써 내려간 글을 통해 영웅들을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는데 어른부부터 초·중·고등부까지, 각 부문의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성인부 Mi Jung Bak(Adult 1등), Morgan Kim(Adult  2등)고등부 1등 Sharon Kim(9학년,Orange County School of the Arts), 2등 *Stella Hahm(10학년 Orange County School of the Arts) *Ashlyn Yi(9학년, Ruben Ayala High School) *Christina  Ryu(9학년, Sunny Hills High School), 3등 *Juha Joel Chang(11학년, High School), *Joshua Chung(10학년, Portola High School), *Hajung Woo(11학년, West Ranch High School), *Kyle Hahm(11학년, Sunny Hills High School)중등부 1등  Jianna Bak(8학년, Cedarlane Academy), 2등 *Siyoon Lee(8학년, Middle School), *Rinnah Bak(7학년, Cedarlane Academy), 3등 *Hayul Bak(8학년, Seoul Academy), *Haeyul Park(8학년, Seoul Academy) *Juhun Hong(7학년, Beatty Jr High)초등부 1등 Gabriella Lee(1학년,  Frances Meeks Elementary School)<고등부 1등> Young Oak Kim: Freedom is not free | Sharon Kim / 9th GradeImagine fighting a war where the cold alone could kill you. During the Korean War, soldiers had to deal with temperatures so low that their rifles would freeze and frostbite could set in within minutes. On top of all that, they still had to fight the enemy. One officer who led his men through these brutal conditions was Young Oak Kim, a Korean American commander whose bravery made him one of the most respected figures of the war. As a Korean American myself, his story feels personal to me. Young Oak Kim's life proves that freedom is never free. He spent his whole life paying for it, first by pushing through discrimination, then by leading soldiers through one of the hardest wars in American history, and finally by coming home and continuing to fight for his community. Young Oak Kim was born in 1919 in Los Angeles to Korean immigrant parents, which is something I can relate to because my family has a similar background. Life was really hard for him growing up. His family didn't have much money, and being Asian American back then meant dealing with a lot of racism. Even though he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people treated him like he didn't really belong here. Historian Ronald Takaki wrote that Asian Americans during this time constantly felt like they were both insiders and outsiders in American society (Takaki 7–8). I think a lot of Korean Americans still feel that way sometimes, even today. Before he ever put on a uniform, Kim was already fighting just to be treated as an equal. But instead of giving up, he used those experiences to push himself harder. He even served in World War II with the 442nd Regimental Combat Team, a unit made up mostly of Japanese American soldiers who were fighting for a country that had put their own families in internment camps. That really says a lot about the kind of person Kim was becoming. When the Korean War started, Kim served as an officer in the U.S. Army's 7th Infantry Division. This war feels especially close to me because Korea is where my family roots are. The whole peninsula was being torn apart. Families were separated and entire cities were destroyed. According to the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soldiers had to fight in conditions where the weather and terrain were just as dangerous as the enemy itself. It was dangerous in every direction. What made Kim stand out was how much he actually cared about his soldiers. Instead of staying somewhere safe and giving orders, he went out to where his men were, even under enemy fire, just to check on them. The U.S. Army's leadership manual says that good leaders have to stay calm and make smart decisions even when everything is chaotic (U.S. Department of the Army, FM 6-22, Ch. 2). His soldiers trusted him because he was right there with them, going through the same dangerous things they were. Every single day in Korea was proof that freedom has a price, and Kim and his soldiers were the ones paying it. After he retired as a colonel, Kim moved back to Los Angeles and became really important in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 He worked hard to improve education, create more opportunities, and give Asian Americans a bigger voice in politics at a time when they were being ignored. Historian Sucheng Chan wrote that Asian American history has always been about fighting to be recognized and included in America (Chan 3–5). That really means something to me because my own parents came here hoping for exactly that. A real chance at a better life. There is even a center named after him called the Young Oak Kim Center for Korean American Studies, which helps students get better opportunities and become leaders. When I read about that I thought about how hard my own parents have worked to give me a good education. Kim understood that freedom isn't just about surviving a war. It also means having access to school and a fair shot at life. Young Oak Kim's story means a lot to me because I see parts of my own family's story in it. He was the child of Korean immigrants, he faced discrimination, and he still chose to serve and fight for this country. He fought in a war on the same peninsula my family comes from, and when he came home, he didn't stop. He kept working to make life better for his community. My parents came to America because they wanted a better life and more freedom. Kim's story reminds me that none of that was free. A lot of people worked really hard and gave up a lot for the opportunities I have today, and that's not something I want to take for granted. Works Cited Chan, Sucheng. Asian Americans: An Interpretive History. Twayne Publishers, 1991. Takaki, Ronald. Strangers from a Different Shore: A History of Asian Americans. Back Bay Books, 1998. U.S. Department of the Army. Field Manual FM 6-22: Army Leadership. 2006.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Korean War Operational Conditions and Combat Reports." U.S. Army, https://history.army.mil. Korean War historical archive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https://www.archives.gov. ............................................ <성인부 1등> The Miracle of Life Wrought by the Wings of Conviction  – In Honorof Colonel Dean Hesse | Mi Jung Bak / 성인부Throughout my long career as a nurse, standing on the front lines where life and death intersect, I have learned that life is a treasure as precious as it is fragile. Today, within this meaningful space of Global Healing Art Therapy—where we strive to mend historical wounds through the power of art—I wish to reflect on the legacy of a true hero: Colonel Dean Hess. He was a man who, as a soldier, exemplified the most sublime height of humanity.In December 1950, the sub-zero temperatures of the Korean Peninsula were more than just a matter of weather. Amidst the desperate chaos of the January 4th retreat, over 1,000 war orphans were left stranded in Seoul. In that tragic moment, when most would prioritize their own safety, Colonel Hess made a decision that resonates with me far beyond any military achievement. Instead of waiting for formal orders, he chose to prioritize the lives of dying children. Through "Operation Kiddy Car," he mobilized 15 transport planes to evacuate these orphans to the safety of Jeju Island. It was the most radiant bloom of life to emerge from the darkest of battlefields.His devotion was never a mere temporary relief effort. He poured his soul into the "Bout One" project, laying the foundation for the Republic of Korea Air Force and personally training Korean pilots. Even after the war, he donated the entire proceeds of his autobiography to build orphanages in Korea. The "Hope Village" he established in Jeju became a cradle of healing, mending the emotional scars of the conflict and planting seeds of dreams back into the hearts of children.As a mother raising two daughters in Los Angeles, I have always emphasized to them that the peaceful lives they enjoy today are not a given. Just as the children Colonel Hess saved grew to become the pillars of modern Korea, his motto, "I Believe I Fly" (Shin-Nyeom-Ui-Jo-In), has become a guiding compass for my daughters, teaching them the value of devotion to others.The freedom we enjoy today is the most valuable legacy, bought by the blood and sweat of our veterans. I now deeply understand that what you protected so fervently was not just territory, but the innocent laughter and future of our children. I will carry your noble sacrifice in my heart forever and pledge to live a life that sows seeds of peace. To Colonel Dean Hess and all the veterans who served: I offer you my eternal respect and deepest gratitude.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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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가정의 달은 왜 5월일까? 사람과사회
    유난히 가정과 관계날 기념일이 많은 달이 바로 5월이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등이 모두 5월에 집중됐다. 매년 5월 두번째 주일은 모든 미국인들이 어머니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로 지키고 있다. 미국에서 어머니날(Mother's Day)이 국가 기념일로 선포된 배경은 한 여성의 지극한 효심과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어머니날은 1900년대 초 안나 자비스(Anna Jarvis)라는 여성으로부터 시작됐다. 1905년 5월 둘째 주 일요일, 안나의 어머니인 앤 리브스 자비스(Ann Reeves Jarvis)가 세상을 떠났다. 안나는 평소 "어머니들의 노고를 기리는 기념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던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기념일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1908년 5월 10일, 안나는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한 교회에서 어머니를 추모하는 첫 공식 예배를 열었는데 이때 그녀는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흰 카네이션 500송이를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이것이 오늘날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풍습의 기원이 되었다. 안나는 어머니날을 국가 공휴일로 만들기 위해 정계와 교계 인사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쓰며 캠페인을 벌였으며1910년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처음으로 어머니날을 공식 휴일로 선포했고, 1911년까지 거의 모든 주에서 이 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마침내 1914년, 미국 의회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1914년 5월 9일, 당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대통령령(Proclamation 1268)을 통해 이를 국가 기념일로 공식 선포했다.윌슨 대통령은 이 날을 "미국 어머니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날"로 규정하고, 관공서와 가정에 성조기를 게양할 것을 권고했다.한국도 이 영향을 받아 1956년 '어머니날'을 제정했다가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확대 개편했다.초록이 짙어지는 계절의 여왕 5월. 우리 곁을 지켜주는 어머니 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가정의 달'이다.바쁜 일상 속에 잊고 지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온기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그렇다면 왜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하는걸까? 5월에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이 집중된 이유는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행복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으로 5월 5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위해 제정했고 평생 헌신하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날이며 5월 15일은 UN이 제정한 세계 가정의 날로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 지정한 국제적인 기념일이다. 또한 5월 21일은 '둘(2)이 만나 하나(1)가 된다'는 의미를 담아 부부의 날로 제정했다.최근 변화하는 가족, '형태'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 하겠다. 요즘 가정 모습은 1인 가구, 비혼 가족, 다문화 가족 등으로 매우 다양해 지면서 혈연이나 전통적인 가계도보다 서로를 지지하고 아끼는 '마음의 결합'이 가정의 본질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도 갈등이 깊어지는 시대, 진정한 소통이 필요한 때이기다 하다.  가정의 달을 뜻깊게 보내는 법단순히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겠다. 하루 정도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겠고 아이들과 함께 편지 쓰기, 가족 신문 만들기, 혹은 가족의 역사를 담은 영화나 책을 함께 보는 활동을 추천한다. 또한 "고마워요", "사랑해요" 같은 평범하지만 강력한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 것이 행복한 가정의 시작이겠다. 가족들과 함께 간단한 나들이를 위해 오렌지카운티(OC) 인근에서 2026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계획된 행사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30년 넘게 이어진 애너하임 어린이 축제 (Anaheim Children’s Festival)가 5월 16일(토) 11:00 AM – 3:00 PM에 애너하임 피어슨 공원(Pearson Park)에서 열리는데 모든 예술 체험 활동이 무료다. 가든그로브 딸기 축제 (Garden Grove Strawberry Festival)는 5월 22일(금) ~ 25일(월)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 열리는데 가든그로브 빌리지 그린 공원(Village Green Park)로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행사 중 하나로, 대규모 퍼레이드, 놀이기구, 딸기 케이크 시식 등이 진행되어 온 가족이 나들이하기 좋다. 미니어처 기차 탑승 (Miniature Train Rides)행사는 5월 17일(일) (매월 셋째 주말) 코스타 메사 페어뷰 공원(Fairview Park)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미니어처 기차를 타고 공원을 둘러볼 수 있어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에게 인기가 높다. 가족 펀 페스티벌 & 리소스 페어 (Think Together Family Fun at the Park)는  5월 30일(토) 10:00 AM에 산타애나 칼 손튼 공원(Carl Thornton Park)에서 음식, 게임, 공예 활동과 더불어 아동 발달 정보를 제공하는 무료 가족 친화 행사가 열린다. 그외 어머니날 특별 행사 (Mother's Day Events)가 지역별로 다양하게 열리니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보자.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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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9
    [연예] BTS, 멕시코 간식 즐기고 스페인어 인사…3일간 15만 열광 사람과사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7일과 9~10일(이하 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연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 공연에 사흘간 15만명이 찾았다고 소속사 빅히트뮤직이 12일 밝혔다.방탄소년단이 멕시코에서 팀 콘서트를 연 것은 2015년 7월 이후 10년 10개월 만이다. 3회 공연 티켓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방탄소년단은 공연에서 현지 문화를 무대 곳곳에 녹여내며 멕시코 팬들을 세심하게 배려했다.이들은 '위 고인 프롬 멕시코 시티'(We goin' from Mexico City)라는 가사가 있는 '에어플레인 pt.2'(Airplane pt.2)를 선곡하는가 하면, '에일리언스'(Aliens) 무대에서는 멕시코 전통 프로레슬링 '루차 리브레' 마스크를 쓴 댄서를 등장시켰다. 뷔는 '아이돌'(IDOL)을 부르다가 공연장 한켠에 마련된 현지 간식 반데리아를 집어 들기도 했다.멤버들은 "여러분은 정말 최고였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느냐"며 "멕시코에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소감을 전했다.또한 스페인어로 "소칼로 광장에서부터 이어진 열기를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멕시코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득 안고 간다"고 했다.현지 당국에 따르면 지난 9∼10일 공연장 밖에도 약 3만5천명이 운집한 것으로 추산됐다. 인파가 주변 도로까지 확산하면서 일부 구간이 통제됐다.LA타임스는 "보이밴드가 국제 외교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일은 흔치 않다"며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멤버들을 대통령궁에 초청한 사실을 전했다. 이 매체는 100만명 이상이 티켓 구매를 시도했고,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공연장 주변에 모였다고 보도했다.또한 멕시코시티 상공회의소는 이번 공연으로 티켓 판매, 항공, 숙박, 식음료, 지역 상권 소비 등 약 1억750만달러(약 1천586억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방탄소년단은 오는 16~17일과 19일 미국 스탠퍼드에서 투어 열기를 이어간다. 현지 교통국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콘서트를 위해 특정 버스 노선을 특별 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멤버들은 이후 23~24일과 27~28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콘서트를 연 뒤 다음 달 12~13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아미'(팬덤명)를 만난다. 부산 공연 둘째 날인 6월 13일은 데뷔 13주년 기념일로 방탄소년단과 국내 팬 모두에게 뜻깊은 시간이 될 전망이다.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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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8
    [연예] BTS 컴백에 하이브의 위버스 이용자 20%↑…발매일 라이브 1천170만뷰 사람과사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컴백에 힘입어 하이브의 팬 플랫폼 위버스 이용자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11일 하이브 자회사 위버스컴퍼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위버스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직전 분기 대비 20% 증가한 1천337만명에 달했다.위버스컴퍼니는 "방탄소년단의 5집 '아리랑'(ARIRANG) 발매와 관련해 커뮤니티 기능은 물론, 커머스(상거래)·미디어·라이브 스트리밍 등 약 30가지 서비스 영역이 아티스트와 팬 활동에 전방위적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올해 1월 5일 위버스를 통해 방탄소년단 컴백 앨범이 공지되자 이날 하루 위버스 방문자는 337만명으로 전일 대비 246% 급증했다.같은 달 14일과 16일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아리랑' 개최와 동명 앨범 예약 판매가 공지되자 양일간 방문자 수는 하루 평균 524만명을 기록했다.위버스컴퍼니는 "공지 게시 전인 1월 1∼13일 하루 평균 방문자는 271만명이었는데, 이보다 93%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또한 화제를 모은 광화문 광장 컴백쇼 소식이 처음 공지된 2월 9일에는 방문자가 전날 대비 44% 늘어났다.컴백을 전후해 팬들은 약 800만건의 포스트(게시글)를 게재했고, '팬레터' 서비스를 통해 멤버들에게 44만8천92건의 메시지를 보냈다.방탄소년단 일곱 멤버도 실시간 라이브인 '위버스 라이브'로 총 10차례에 걸쳐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앨범 발매 당일인 3월 20일 오후 멤버들이 직접 신보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영상은 1천170만회 재생됐다.멤버들이 앨범명을 '아리랑'으로 정하게 된 이유를 처음 밝힌 1월 16일 라이브는 약 780만회 재생됐다. 이 라이브에서 팬들이 남긴 댓글은 약 110만개로 집계됐다.위버스는 이 밖에 상거래 서비스 '위버스샵', 월드투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위버스 콘서트', 실시간 플레이스트 공유 서비스 '리스닝 파티'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했다.위버스 컴퍼니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과 프로모션을 선보인 방탄소년단의 컴백을 계기로 팬 활동을 360도로 지원하는 위버스의 활용성과 서비스 범위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앞으로도 팬 활동의 필수 플랫폼으로서 서비스를 확대하고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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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 이등병이 된 단종…박지훈 ‘취사병 전설이 되다’ 5.8% 출발 사람과사회
    배우 박지훈이 주연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취사병 전설이 되다'가 5%대 시청률로 출발했다.12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tvN에서 방영된 '취사병 전설이 되다' 첫 회 시청률은 5.8%(전국 기준)로 집계됐다.이날 방송에서는 부친상의 아픔과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관심병사로 분류된 신병 강성재(박지훈 분)가 강림소초에 배치돼 취사병이 되는 과정이 그려졌다.자대 배치 후 그의 눈에는 마치 게임 화면에서나 볼 법한 의문의 '상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성재는 상태창에서 제공된 스킬을 사용해 부식 창고 정리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레시피를 획득하며 취사병으로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그러나 극 말미에서 그가 만든 성게알 미역국을 먹은 대대장 백춘익(정웅인)이 쓰러지는 엔딩으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박지훈이 1천6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으로 열연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주목받았다.박지훈의 리얼한 신병 연기와 게임 화면이 조합된 독특한 설정, 부대원들의 다채로운 맛 표현 등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끈 이 작품은 향후 박지훈이 '전설의 요리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나갈 예정이다.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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